-
현대사회를 향한 불교의 생태적 응답현대사회를 향한 불교의 생태적 응답 - 지율 주제가 ‘현대사회를 향한 불교의 생태적 응답’인데 사실 제가 현대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불교의 생태관에 따라 활동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이것은 제가 살고 싶은 세계가 아니다’라고 하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불교적인 관점으로 보일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제가 처음 환경문제를 시작한 이야기를 먼저 드려보려 합니다. 한국에서 스님들은 대부분 공동생활을 통해 수행을 익힙니다. 30~40명이 한방을 쓰며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고 같이 먹고 앉고 같이 걸으며 공부를 합니다. 규율은 비교적 엄격해서 묵언을 하고 자신의 소임 외에는 관여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보통은 3개월을 주기로 해제와 결제를 하며 이 기간에는 많은 것을 통제 받지만 수행은 철저하게 개인적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모든 스님이 그러한 규율 속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5분의 1정도의 스님들은 외부 일에 관여하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고, 5분의 4정도의 스님들은 포교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절을 운영하는 소임을 살게 됩니다. 스님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공부를 하거나 주지를 살거나 사회활동을 해도 계율에 근본하면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통제 시스템이 느슨한 편입니다. 아무튼 사회로 나오기 전에 저는 선방이라고 하는 전자의 세계 속에 있었습니다. 규율이 엄격하지만 열흘에 한번 삭발을 하는 날이 있습니다. 삭발날은 입선을 드리지 않고 자유롭게 산책도 바느질도 하고 차도 마시며 개인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삭발날이면 산을 좋아하는 저는 산에 갑니다. 선원이 산속에 있기에 산행을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산길을 혼자서 걸어 올라갔습니다. 푸른 잎들이 뾰쪽이 내미는 화창한 봄날이었고, 햇살이 나무 사이를 층층이 비껴들어오는 숲길을 걸으며 수행과 공동생활의 긴장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상 가까운 곳에 다다랐을 때, 포크레인이 바위를 깨부수고 있는 현장과 부딪혔습니다. 당황하고 화가 나긴 했지만 제가 처음부터 현장을 보고 멈춰 선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근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늘 보아온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공사현장을 보자 더 이상 산을 갈 마음이 나지 않아 가던 길을 되돌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길을 뛰다시피해서 내려왔습니다. 등 뒤에서 계속 포크레인이 바위를 부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찰에 돌아와 여느 때처럼 좌선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제 귀에 바위가 깨지는 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밖에 나와 먼 산을 바라보면 이상하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며칠 동안 혼자 고민을 하다가 대중스님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스님들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일회용 카메라도 준비했습니다. 그 후 바위를 깨고 산을 깎는 공사가 산을 관광화하기 위해 도로를 만들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관광도로 외에 산의 중앙을 가르고 들어오는 16km 터널도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산정상부와 산 중앙부를 가르고 가는 도로와 터널이 산과 산에 사는 생물들에, 산속에 있는 아름다운 작은 늪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고 그것은 10개의 법적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천성산의 가치를 크게 훼손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 현장을 본 이후로 수행처를 벗어나 거리로 나왔고, 격랑 속에 섰으며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했습니다. 스승에게 예경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은 평온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산문을 떠난 길은 자신이 안주하고 있던 세계의 벽에 부딪히는 일이었고 그동안 쌓았던 수행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 공사 현장을 목격하기 전까지 저는 컴프터는 물론 핸드폰도 만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사회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투표장에 가거나 사회활동에 참여한 일도 없습니다. 처음 일을 하면서도 제 생각은 단순해서, ‘ 산이 아파서 나를 불러 쓰고 싶어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고, ’게으르고 세상의 아픔에 무관심하게 산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사유에 의해 활동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일을 하면서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이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 우리가 자연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무심하게 진행하고 있는 일들이 어떤 과정과 결과로 돌아오는지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자연을 소비하면서 비대해지는 기업과 경제발전을 중요한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의 측면에서 보면 환경과 생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대단히 큰 걸림돌이었고, 저는 개발이나 발전을 저해하는 암과 같은 존재로 지목되었습니다. 제가 ‘산이 울고 있다’고 하자 사람들은 저를 ‘만신’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천성산 생태계의 지표종인 도롱뇽을 원고로 소송하자 기업이 지원하고 있는 연구소들은 천성산 공사 터널 공사가 지연되면 연간 2조 5천억 원의 손실이 난다는 보고서들을 내놓았습니다. 국내 보수 언론 역시 ‘도롱뇽을 살리기 위해 수조원의 국고가 낭비되고 있다며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손실문제를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곧바로 은유를 버렸지만 아이들은 은유를 잘 이해하고 엽서를 써서 소송이 진행중인 법원에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제 운동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단식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천성산 공사 백지화는 취임하는 대통령의 공약사업이었고 도지사, 시장의 공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강을 건너면 배를 버린다.’는 식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도 그것을 관행으로 받아들였지만 저는 그 관행을 수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제가 소중히 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저항했습니다. 단식, 3000배, 3보 1배, 국토순례, 거리 사진전, 어느 때는 공사 현장에서 공사장 사람들과 문자 그대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웠습니다. 일을 하면서 저는 제가 무엇을 피해서 살아왔는지, 세상과 어떻게 소통했는지 신앙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싸워야 하는 힘들이 무엇인지, 저를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 눈에서 무엇이 담겨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국내주요 언론은 연일 기사와 사설을 통해 비난을 퍼부었고 안티카페가 5개나 생겼으며 제 기사에는 조직적인 댓글 팀이 동원되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의 비난보다 제가 지키려고 하는 것들을 잃게 되는 것을 더 상심했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저를 이끌어 준 힘은 우정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뿐 만아니라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제가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불가에서는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형상이 있거나 형상이 없는 모든 것을 화엄이라고 합니다. 바람소리 물소리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 엄마가 아이를 부르는 소리 풍경소리 모두가 세상을 장엄하는 실상이며 이를 화엄이라고 합니다. 빛과 소리를 사랑하고 이해하면 말과 꿈이 맑아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순화된 언어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에게 저항 할 수 있는 수단이 언어였기 때문입니다. ‘도롱뇽과 함께 꿈꾸는 초록빛 세상에는 사랑, 평화 그리고 생명의 숨소리가 있다.’ ‘도롱뇽에게는 하늘 마음이 있고, 희망의 지도가 있다.’ ‘초록의 공명’ 등 평범한 생각들을 거리에 앉아 수놓았습니다. 바느질은 제가 즐겨하던 일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수놓기에 동참해주셨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수녀님들께서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때 거리에 앉아 함께 수놓던 인연이 오늘 이 자리까지 온 게기가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한국에서 불교와 가톨릭의 우정이 시작된 시점이라는 이야기도 드리고 싶습니다. 종교 간의 화합은 같은 지향점을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향한 연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 가난과 빈곤으로 고통 받고 정치적으로 박해 받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만나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우정, 종교 간의 우정은 세상을 순화하는 힘이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노력에 비해서 얻은 것은 아주 적은 것들입니다. 어쩌면 세상은 더 악화되고 있고 가망이 없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현대 사회는 새롭고 복잡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는 물론 저 우주너머 까지 지식을 더 해갑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그것은 단지 지식의 한조각일 뿐입니다. 무한한 공간, 무한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아침 이슬 같은 존재 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직접적인 행복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이상 빼앗지 않고 나누는 삶을 살게 될까요? 저는 질문자로서 그리고 좋은 답을 찾는 사람으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환경문제 외에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농업문제이며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며 적게 가지고 만족 삶의 방식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댐으로 인해 수몰될 지역에서 텐트를 치고 살면서 사람들이 떠나고 폐허가 된 마을에 남아 농사를 지으시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호미를 놓지 않으셨던 할머니들의 삶은 교훈으로 가득했습니다. <영상> 이제 할머니들은 그곳에 남아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고 있으며 강과 그곳에 깃드는 모든 생명들이 존중 받을 수 있도록, 자연은 재화 이상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강의 숨결 느끼기’, ‘강의 땅을 강으로’, ‘댐보다 습지를!’ 이라는 구호 속에서 한 평사기 운동을 진행하고 4대강 기록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영주댐 철거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명이 가는 아주 빠른 걸음 위에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그러나 제 모든 성의를 다해 일을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방문자로 이 세상에 왔다는 것, 언젠가 이 땅을 떠나게 되는 날이 오면 세상의 빛과 조우했던 시간, 세상의 아픔에 함께 했던 우정의 손길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chorok
-
지금 성주와 설악산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일 천성산에서 일어날 것이다.지금 경북 성주, 국립공원 설악산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일 천성산에서 일어날 것이다. 문재인 정찰기·전투기·미사일 등 7조원대 무기 거론 => http://bit.ly/2hlOtOf 설악산을 비롯하여 전국에 케이블카 추진하는 곳은 모두 34곳이다. 기본구상 또는 계획단계인 곳이 28곳, 인허가 완료가 2곳, 공사 중인 곳은 4곳이다. 지자체는 케이블카 사업 통과를 위해 백두대간보호법, 환경영향평가법 등의 규제를 전부 해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팔공산 케이블카 추진 대구시와 해상케이블카 추진 목포시는 사업허가를 위해 토지수용이 가능하도록 법규를 개정중이다. 이낙연 총리 관심사업인 지리산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설치하는 산청군과 함양군은 아예 국립공원지역, 국립공원특별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명승등에 대한 규제를 한꺼번에 해제하려고 준비중이다. 4대강 사업보다 더 많은 개발을 노리는 산악관광개발법과 규제프리존법과 연관이 있으며 국회에 이미 법안이 상정되어 있고, 청와대는 규제프리존법을 통과하는 것을 합의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문재인 정부는 개발독재를 민주주의 절차라는 포장속에 감추고 있다. 토건재벌들은 너무나 신나서 목소리를 낮추고 노래 부르고 있다. (박그림선생님 페북글 편집) 혹자는 산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들도 산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사랑은 이익으로 묶여 촘촘밀밀한데 지킬 눈이, 힘이 없으면 천성산 난개발의 포문이 열리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양산시가 사찰림내 문화재 보호구역에 불법임도를 내고 버젓이 누리길이라는 이름으로 간판까지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공무원들이 간이 부어서가 아니라 불법현장을 지나쳐 가고 싶은 산주와 난개발을 일삼는 암주가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제 담을 넘고 싶어하는 양산시와 개발업자들은 춤이라도 출 판이다. 체게바라는 '불의에 저항하지 않는 자는 적에게 잡아먹히고 만다.'고 했지만 더 큰문제는 불의와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墨 悲 絲 染 이라! 물들어 가는 것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chorok
-
허공꽃이 어지러히 떨어질 때,지난 금요일 속초 박그림 선생님댁에서 1박을 했다. 설악을 보고 싶었지만 산에 오르기 어려운 내게 선생님은 설악이시다. 칠순의 고령에 어깨의 인대가 끊어져도 설악산을 위해 다시 엄동의 거리에서 시작하시겠다고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동안 속앓이 하던 천성산 문제의 맘을 정리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이순의 나이가 되면 다시 거리에 서지 않겠다고, 주문처럼 그려왔던 노년의 삶이 있었다. 4대강 기록관 건립은 내심 그런 의미를 가지고 시작했다. 기록하고 기록을 전하는 일이 내 마지막 소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일을 하면서도 일을 피하고 싶어했다. 지난 1년 동안 천성산 일을 하면서도 천성산 문제를 정리하는 기회라는 생각과 내가 겪어 온 거친 길을 다른 사람은 피해가기를 바라며 애를 태웠고, 낙동정맥의 끝자락에 놓인 천성산이이 땅에서 일어나는 개발의 상징이기에 놓지를 못했다. 지난 날, 천성산 문제로 거리에 나설 때, 세상에 무관심했던 벌이라며 받아들였는데, 지금 닥쳐있는 일들은 일을 피하고 싶어하는 벌인가보다. 다시 거친 물길을 따라 흘러야 하는 길에서 생각은 만갈래로 흔들리지만 옛사람들도 '전할 사람이 있으면 전하고 없으면 가져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 허공꽃이 어지러이 떨어질 때, '한조각 땅을 얻었다'고 하시고 만공스님께 인가를 받으신 상노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으며 허공에서 떨어진 한조각 땅을 가꾸기 위해 다시 호미를 들고 밭가는 일을 시작하려 한다. 한조각 땅에 기대어 일어날 이 땅의 미래를 위하여chorok
-
멸종위기 야생생물포유류 멸종위기 야생포유류 Ⅰ급 1ㄱ담비 Martes flavigula 무산쇠족제비 Mustela nivalis 물개 Callorhinus ursinus 물범 Phoca largha 삵 Prionailurus bengalensis 작은관코박쥐 Murina ussuriensis 큰바다사자 Eumetopias jubatus 토끼박쥐 Plecotus auritus 하늘다람쥐 Pteromys volans aluco 멸종위기 야생포유류 Ⅱ급 검독수리 Aquila chrysaetos 넓적부리도요 Eurynorhynchus pygmeus 노랑부리백로 Egretta eulophotes 두루미 Grus japonensis 매 Falco peregrinus 저어새 Platalea minor 참수리 Haliaeetus pelagicus 청다리도요사촌 Tringa guttifer 크낙새 Dryocopus javensis 혹고니 Cygnus olor 황새 Ciconia boyciana 흰꼬리수리 Haliaeetus albicilla 조류 멸종위기 야생조류 Ⅰ급 검독수리 Aquila chrysaetos 넓적부리도요 Eurynorhynchus pygmeus 노랑부리백로 Egretta eulophotes 두루미 Grus japonensis 매 Falco peregrinus 저어새 Platalea minor 참수리 Haliaeetus pelagicus 청다리도요사촌 Tringa guttifer 크낙새 Dryocopus javensis 혹고니 Cygnus olor 황새 Ciconia boyciana 흰꼬리수리 Haliaeetus albicilla 멸종위기 야생조류 Ⅱ급 개리 Anser cygnoides 검은머리갈매기 Larus saundersi 검은머리물떼새 Haematopus ostralegus 검은머리촉새 Emberiza aureola 검은목두루미 Grus grus 고니 Cygnus columbianus 고대갈매기 Larus relictus 긴꼬리딱새 Terpsiphone atrocaudata 긴점박이올빼미 Strix uralensis 까막딱다구리 Dryocopus martius 노랑부리저어새 Platalea leucorodia 느시 Otis tarda 독수리 Aegypius monachus 따오기 Nipponia nippon 뜸부기 Gallicrex cinerea 먹황새 Ciconia nigra 무당새 Emberiza sulphurata 물수리 Pandion haliaetus 벌매 Pernis ptilorhynchus 붉은배새매 Accipiter soloensis 붉은해오라기 Gorsachius goisagi 뿔쇠오리 Synthliboramphus wumizusume 뿔종다리 Galerida cristata 새매 Accipiter nisus 새호리기 Falco subbuteo 섬개개비 Locustella pleskei 솔개 Milvus migrans 쇠검은머리쑥새 Emberiza yessoensis 수리부엉이 Bubo bubo 알락개구리매 Circus melanoleucos 알락꼬리마도요 Numenius madagascariensis 올빼미 Strix aluco 재두루미 Grus vipio 잿빛개구리매 Circus cyaneus 조롱이 Accipiter gularis 참매 Accipiter gentilis 큰고니 Cygnus cygnus 큰기러기 Anser fabalis 큰덤불해오라기 Ixobrychus eurhythmus 큰말똥가리 Buteo hemilasius 팔색조 Pitta nympha 항라머리검독수리 Aquila clanga 호사비오리 Mergus squamatus 흑기러기 Branta bernicla 흑두루미 Grus monacha 흑비둘기 Columba janthina 흰목물떼새 Charadrius placidus 흰이마기러기 Anser erythropus 흰죽지수리 Aquila heliaca 양서류ㆍ파충류 멸종위기 야생 양서 파충류 Ⅰ급 비바리뱀 Sibynophis chinensis 수원청개구리 Hyla suweonensis 멸종위기 야생양서 파충류 Ⅱ급구렁이 Elaphe schrenckii 금개구리 Rana chosenicus 남생이 Mauremys reevesii 맹꽁이 Kaloula borealis 표범장지뱀 Eremias argus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chorok
-
한방울의 이슬이 되어 보자새벽, 아직 남아있는 어둠을 걷어내기 위하여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한다. 새소리에 잠이 깬 시냇물은 물안개를 피워 산기슭으로 올려 보낸다.아직 다 오르지 못한 물안개는 이제 막 눈을 뜨는 앵초잎에 이슬로 남아 있다.일상의 분주함으로 돌아가기 직전, 긴장으로 또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일과에서 순간이나마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꽃잎에 내려앉은 한 방울의 맑은 이슬이 되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불경에는 모든 것이 안개와 같고 이슬과 같다고 하였다. 오늘 자신에게 일어날 많은 일들을 이제 곧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부서져 허공 속으로 곤두박질쳐 사라져버릴 풀잎에 맺혀 있는 이슬의 여정이라고 생각해보자. 그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우리 삶의 단편적인 순간에 찾아오는 통찰이다. 그 한 방울의 이슬은 우주적인 무의식으로 통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한 방울의 이슬이 되어보려는 노력과 마찬가지로, 나무가 되거나 숲이 되거나 자유로운 새가 되어보자. 때로는 차가운 바위에 붙어 비를 기다리는 이끼가 되기도 해보자.그런 체험들은 사물과 우리의 관계를 밀접하고 친근하며 생동감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해준다. 사람들이 숲으로 들어서서 숲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긴장 때문이다.만일 우리가 산을 오를 때, 정상을 오르려는 마음을 놓아버리고 그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한 그루 나무의 벗이 된다면,우리는 부담 없이 그 나무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부드러운 흙냄새를 맡으며 그 나무 아래 누워 잠들기도 할 것이다.새들이 날아와 단잠을 깨우려 해도 우리는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사물과 하나가 되려는 체험은 우리 삶의 환영이 얼마나 무서운 집착인지 알게 해주며, 수많은 가치와 의미부여로 시달리는 우리 삶에 균형을 잡아준다. 자아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자연의 섭리 속에서 자신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자유롭고평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연적인 삶의 방식은 게으름이라고 생각한다.찰나적이고 일회적인 삶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그러나 진정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며, 필요 이상으로 축적하지 아니하고 조촐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주위의 지인들 중에 느리게 살기 운동, 면허증, 카드, 휴대전화, 내 집 안 가지기 운동 등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이러한 분들이야말로 성공과 출세에 현혹되지 않고 건강한 미래를 일으켜 나갈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게으른 일꾼이 아닐까 …………. 지율chorok-1
-
자연의 권리소송- 도롱뇽이 쓰는 편지우리에게 도롱뇽 소송으로 알려진 자연의 권리소송은 2003년 내원사 미타암 그리고 41만 도롱뇽의 친구들이 원고로 참여한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반대 운동이다. 도롱뇽의 친구들은 도롱뇽 소송을 통해 많은 담론을 만들어 냈지만 터널은 뚫렸고 원고들이 제기한 피해는 고스라히 천성산의 아픔으로 남아있다. 2000년 벽두에 우리사회에 던진 화두는 고스란히 이 땅의 아픔으로 남아있다. 그동안 진행 된 대부분의 환경사안은 법정에서 인정되지 못하였다. 제도권의 문제를 다시 제도권으로 가져간 꼴이었다. 이제 우리는 호소의 방법을 바꾸어 가진자의 법, 가진자가 만든 법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는 떳떳함과 정의로움에 의한 법, 두꺼운 법전속에 인간만이 읽을 수 있는 비밀문서 같은 법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지구적 관점에 의한 법을 공부하고 만들어 가려한다. 도롱뇽이 쓰는 편지 우리의 친구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처음 우리를 법정에 서라고 했을 때 우리 도롱뇽의 세계에는 일대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법정이라는 곳은 이익과 탐욕과 시비가 들끓는 곳으로 죄지은 자를 벌하는 곳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우리가 인간의 법정에 서야 하는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수많은 억측과 소문들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동안 우리 세계의 뉴스는 고작 새싹들이 등을 간질이는 이야기나, 나무뿌리에 기대 살던 도순이와 도돌이가 장마에 쓰러진 집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야기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자신의 영역에서 조용히 천성의 일부로 서로의 삶을 지탱하며 많이 알 필요가 없는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자연 그 자체를 집으로 삼고 있는 우리들은 따뜻한 땅의 기운과 축축한 밤이슬을 호흡하며, 달빛에 반사되는 흰 바위틈을 헤집고 부드러운 냄새가 나는 썩은 나무 등걸을 타고 다니면서, 수억 년 동안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생존의 지혜를 익히고 그 순리를 따르며 천성의 아름다운 늪과 기슭에서 조용한 평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천적이 있고 우리를 위협하는 많은 일들이 있지만 공생과 상관관계에서 협력하고 조화를 유지하며 자연이 준 수명에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천성의 계곡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우리를 아예 생명의 호적에서 지워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멸종해 가고 있는 우리의 운명을 예견했던 것일까요. 멸종 위기종―그것은 우리를 향한 연민의 이름이며, 환경 지표종―그것이 현재 지구적인 위기에 처한 우리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사람들은 쫓기는 동물과 멸종의 위기에 놓인 생물들이 겪는 비애에 대하여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인간의 걸음걸이가 두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인간의 법정에 서려는 것은 인간의 침해에 의해서 사라져가는 도롱뇽이라는 개체로서의 비극 때문이 아니라, 공동의 뿌리로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아름다운 생명의 어머니―천성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밤이면 갈대밭 사이로 천 명의 성인이 내려와 생명이 있거나 없는 모든 것을 향해 화엄의 진리를 설하고, 달빛 속에 아홉 용을 키우고 있다는 것은 결코 신화가 아닙니다. 그 전설과 신화 속에서 어머니 천성은 잠시도 쉬지 않고 22개의 늪과 12계곡으로 물을 길어 부으며 우리를 돌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노동은 우리의 생명의 연줄이며 한숨은 바람이 되고 고요한 호흡은 이슬이 됩니다. 바람과 비, 안개와 이슬―이것은 우리를 키우는 어머니 천성의 손길입니다. 지금 우리는 천성의 품에 들어 긴 겨울의 잠을 자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어머니 천성은 우리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낙엽을 덮고 눈을 불러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눈과 낙엽이 덮인 땅 밑에서 봄을 기다리며 꿈꾸고 있는 생명들은 우리 도롱뇽뿐만이 아닙니다. 무당개구리와 두더지, 얼레지며 노루귀, 현호색과 제비꽃, 멀리서 날아온 솔씨도 우리 곁에 잠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을 지하―죽음의 세계라고 한다지요. 그러기에 그들은 어머니 천성의 옆구리를 뚫어 갈비뼈를 꺼내고 심장을 잘라 사람들이 다닐 길을 낸다지요. 봄이 와도 싹을 틔울 수 없는 생명들이 늘어나고 돌아가 알을 낳을 수 있는 샘과 계곡이 줄어든 뒤 사람들은 생명의 어머니 천성은 죽었다고, 22개의 늪과 아름다운 12계곡의 이야기는 신화였다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도롱뇽의 친구라고 하는 사람들이 왜 우리를 법정에 세웠는지 알게 되었으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법정에 서려는 것은 잠시도 쉬지 않고 생명과 생명의 싹을 키우기 위해 물을 길어 붓고 있는 어머니 천성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법정에 선 우리는 지구 가족으로의 연대와 우정을 믿으며 여러분들께 호소합니다. 생명의 어머니 천성을 구해주세요. 우리의 아름다운 어머니 천성을 살려주세요. 추신 법정에서, 공단의 관계자들과 영향평가에 함께했던 교수들은 천성산 지역에서 도롱뇽의 서식을 확인하지 못했으며 도롱뇽이 살 가능성은 배제 할 수 없지만 살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실질적으로 도롱뇽의 서식을 부인하는 법적 증언을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수달과 원앙, 삵과 담비, 소쩍새와 황조롱이, 꼬마잠자리 물방개 등 천성산에 살고 있는 30종의 보호 동식물에 대하여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천성산에는 특별히 보호를 요하는 동식물은 없음” 이라는 놀라운 보고서로 환경영향평가의 면죄부를 주게됩니다. 천성의 깊은 숲에서 밤마다 울어 대는 소쩍새와 두견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귀를 막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봄이면 온 산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얼레지며, 은방울꽃, 현호색, 피나물군락, 족두리꽃, 천남성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눈을 가리게 한 것은 무엇일까요. 눈앞의 이익에 가려 그들에게는 그 모든 생명의 빛과 소리가 정녕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들이 들을 수 없었던 것은 비단 소쩍새와 두견의 소리 뿐만이 아니며 ‘그들은 텅 빈 허공에 울려 퍼지는 바람소리, 물소리, 그 가운데 생명이 일어나며서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소리가 진동이라는 것을, 진동은 파장이라는 것을 이해 할 수는 있었지만, 파장이 에너지이며 에너지는 생명이라는 것을, 그들이 걷고 있는 논리의 길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빛이 내리고 바람소리, 물소리가 우리의 생명 현상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그렇게 많은 지식이 필요치 않습니다. 물소리 맑은 내원의 계곡에 들어서서 잠시만 귀 기울이면 조용히 꿈꾸는 도롱뇽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chorok
-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 (이본 베스킨)생명 인류의 가장 오래된 믿음과 가장 심층적인 상징들은 우리가 자연세계, 살아있는 행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 그러한 생각이 죽음과 분해, 재생과 부활이라는 순환개념을 통해 오래전부터 인간의 의식속에 새겨져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살과 뼈와 낙엽이 분해되어 먼지가 되고, 씨가 철이 되면 싹이 터서 흙속에서 새로운 양분을 발견하며, 강물이 마르지 않고 끝없이 흐르고, 우리가 고갈되지 않는 산소를 편생 들이마실수 있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세계에 매료되고 외계공간을 탐사한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지만, 다른 행성에서 이런 것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인류는 최근까지도 이런 서비스들이 지구의 미생물과 식물과 동물이 풍부한 다양성을 통해 수행하는 “자연이 하는 일” 이라는 것을 제데로 이해하지 못했다. 인류가 유독 살기 적합한 행성이 된 것은 우리가 생물 다양성이라고 부르는 서로 뒤얽혀 배열되어 있는 생물들의 망, 복잡하게 연결된 생물들의 그물들을 통해 조화로운 활동이 이루어진 덕분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그물을 이루고 있는 종들은 자신의 서식지를 침략하는 인간들에 의해 전례없는 위협을 받고 있다. 생명 다양성의 위기 지구에 등장한 인류의 집단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생활 수준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여 왓고, 댓가로 자연계의 풍부함과 복잡성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감소하여 가고 있다. 자연의 다양성은 마을. 주택. 개발단지. 주차장. 도로. 공장. 광산. 쇼핑몰. 학교. 공원. 정원. 골프장. 농장. 밭 등의 인공 공간들이 현란하게 뒤섞이면서 무자비하게 단순해지고 있다. 지구 생명체의 다양성에 가장 큰 위험을 가하는 것은 서식지 상실과 공동체 내로 외부종의 유입. 깍고 쟁기질하고 배수하고 준설하고 밑바닥까지 긁고 폭파하고 막는 일을 통해 벌어지는 자연의 파편화이다. 또 인류는 과잉 방목과 과잉 경작을 통해 자연 공동체를 약탈하고 , 그 공동체에 과량의 살충제와 제초제를 뿌리고, 그 위에 산성비와 다른 오염 물질을 떨구고, 공기의 기체조성을 바꾸며, 육상의 생명체들이 기대고 있는 자외선 차단막의 두께를 줄이고 있다. 이런 공격중에는 생태계 전체를 없애버리고 직접적으로 혼란에 빠트릴 정도로 규모가 큰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습지의 물을 빼거나 메우는 행동, 숲을 유역과 영구히 단절시키는 행동은 홍수와 침식을 억제하고 물을 빨아 들이고 정화하는 등 그 생태계가 제공하던 서비스를 순식간에 제거한다. 책임과 이기심 우리의 대다수는 이런 황폐화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우리 자신이 자연에서 하는 일에 점점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 인류의 거의 절반이 도시에서 살며 그 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집과 사무실에 틀어박힌 채, 짧게 깎인 잔디밭과 포장도로를 통해 야생과 격리 된 채, 수돗물과 랩으로 싼 음식을 먹다보 면 , 우리가 식물, 동물, 곤충, 미생물과 그들이 이끄는 순환 과정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공동체 그물 종을 잃었을 때 가장 중요하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 중의 하나는 공동체 구조와 생태적 기능에 더 큰 변화를 이야기하는 되먹이 작용이나 반작용 일것이다. 정의에 따르면 쐐기돌 종의 상실은 공동체 전체에 극적인 파문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드물게 보이거나 하찮은 종이라 해도 다른 종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생태계 과정들에 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한 식물이 사라질때 마다 평균 10-30종류의 다른 종들이 무너져 내린다고 한다. 다양한 식물들의 번식 성공 여부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벌, 나방, 박쥐, 벌새 같은 동물들이 바로 이런 이동 연결고리이다. 그리고 이 각각의 식물들은 대게 서로 독립적인 먹이 그물을 지탱하고 있다. 자기 보존으로서의 수단 어느 생물이 핵심적인 생태계 서비스들을 유지하는데 과학자들이 거의 모르는 상태이므로 생존을 염두에 둔 인간 종이 선택행야 할 가장 신중한 경로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행동하고 모든 생물들을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사회적 경제적 대안일 것이다. 지금 이 싯점에서 과학자들이 건강한 기능을 위해 선택할 최선의 대안은 자연의 다양성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며 종의 상실은 기능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행히도 생물다양성의 상실을 전면적으로 중단 시키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지구 육지 표면 중 공원과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 인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곳이 이미 95%를 넘어서 있다. 대양과 바다는 지구의 70%를 덮고 있지만 착취와 쇠퇴로 부터 정식 보호되고 있는 곳은 0.25%에 불과하다. 우리가 자연계를 약탈 할 수록 지구의 인간 수용능력, 즉 호모 사피엔스를 지탱하는 능력은 점점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방치 할 것인지를 제데로 알고 결정하는 것을 선별이라고 하고 그것은 보호론자들에게는 익숙치않은 전략이다. 하지만 이미 인류 사회는 없어도 사는데 지장없는 것들에 얼마 안되는 보존 비용을 쓰는 쪽을 택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다.chor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