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권리소송- 도롱뇽이 쓰는 편지
chorok
2017-09-23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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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도롱뇽 소송으로 알려진 자연의 권리소송은 2003년 내원사 미타암 그리고 41만 도롱뇽의 친구들이 원고로 참여한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반대 운동이다. 도롱뇽의 친구들은 도롱뇽 소송을 통해 많은 담론을 만들어 냈지만 터널은 뚫렸고 원고들이 제기한 피해는 고스라히 천성산의 아픔으로 남아있다. 2000년 벽두에 우리사회에 던진 화두는 고스란히 이 땅의 아픔으로 남아있다. 그동안 진행 된 대부분의 환경사안은 법정에서 인정되지 못하였다. 제도권의 문제를 다시 제도권으로 가져간 꼴이었다.
이제 우리는 호소의 방법을 바꾸어 가진자의 법, 가진자가 만든 법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는 떳떳함과 정의로움에 의한 법, 두꺼운 법전속에 인간만이 읽을 수 있는 비밀문서 같은 법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지구적 관점에 의한 법을 공부하고 만들어 가려한다.
도롱뇽이 쓰는 편지
우리의 친구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처음 우리를 법정에 서라고 했을 때 우리 도롱뇽의 세계에는 일대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법정이라는 곳은 이익과 탐욕과 시비가 들끓는 곳으로 죄지은 자를 벌하는 곳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우리가 인간의 법정에 서야 하는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수많은 억측과 소문들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동안 우리 세계의 뉴스는 고작 새싹들이 등을 간질이는 이야기나, 나무뿌리에 기대 살던 도순이와 도돌이가 장마에 쓰러진 집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야기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자신의 영역에서 조용히 천성의 일부로 서로의 삶을 지탱하며 많이 알 필요가 없는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자연 그 자체를 집으로 삼고 있는 우리들은 따뜻한 땅의 기운과 축축한 밤이슬을 호흡하며, 달빛에 반사되는 흰 바위틈을 헤집고 부드러운 냄새가 나는 썩은 나무 등걸을 타고 다니면서, 수억 년 동안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생존의 지혜를 익히고 그 순리를 따르며 천성의 아름다운 늪과 기슭에서 조용한 평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천적이 있고 우리를 위협하는 많은 일들이 있지만 공생과 상관관계에서 협력하고 조화를 유지하며 자연이 준 수명에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천성의 계곡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우리를 아예 생명의 호적에서 지워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멸종해 가고 있는 우리의 운명을 예견했던 것일까요.
멸종 위기종―그것은 우리를 향한 연민의 이름이며,
환경 지표종―그것이 현재 지구적인 위기에 처한 우리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사람들은 쫓기는 동물과 멸종의 위기에 놓인 생물들이 겪는 비애에 대하여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인간의 걸음걸이가 두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인간의 법정에 서려는 것은 인간의 침해에 의해서 사라져가는 도롱뇽이라는 개체로서의 비극 때문이 아니라, 공동의 뿌리로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아름다운 생명의 어머니―천성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밤이면 갈대밭 사이로 천 명의 성인이 내려와 생명이 있거나 없는 모든 것을 향해 화엄의 진리를 설하고, 달빛 속에 아홉 용을 키우고 있다는 것은 결코 신화가 아닙니다. 그 전설과 신화 속에서 어머니 천성은 잠시도 쉬지 않고 22개의 늪과 12계곡으로 물을 길어 부으며 우리를 돌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노동은 우리의 생명의 연줄이며 한숨은 바람이 되고 고요한 호흡은 이슬이 됩니다. 바람과 비, 안개와 이슬―이것은 우리를 키우는 어머니 천성의 손길입니다. 지금 우리는 천성의 품에 들어 긴 겨울의 잠을 자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어머니 천성은 우리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낙엽을 덮고 눈을 불러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눈과 낙엽이 덮인 땅 밑에서 봄을 기다리며 꿈꾸고 있는 생명들은 우리 도롱뇽뿐만이 아닙니다. 무당개구리와 두더지, 얼레지며 노루귀, 현호색과 제비꽃, 멀리서 날아온 솔씨도 우리 곁에 잠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을 지하―죽음의 세계라고 한다지요. 그러기에 그들은 어머니 천성의 옆구리를 뚫어 갈비뼈를 꺼내고 심장을 잘라 사람들이 다닐 길을 낸다지요. 봄이 와도 싹을 틔울 수 없는 생명들이 늘어나고 돌아가 알을 낳을 수 있는 샘과 계곡이 줄어든 뒤 사람들은 생명의 어머니 천성은 죽었다고, 22개의 늪과 아름다운 12계곡의 이야기는 신화였다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도롱뇽의 친구라고 하는 사람들이 왜 우리를 법정에 세웠는지 알게 되었으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법정에 서려는 것은 잠시도 쉬지 않고 생명과 생명의 싹을 키우기 위해 물을 길어 붓고 있는 어머니 천성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법정에 선 우리는 지구 가족으로의 연대와 우정을 믿으며 여러분들께 호소합니다.
생명의 어머니 천성을 구해주세요. 우리의 아름다운 어머니 천성을 살려주세요.
추신
법정에서, 공단의 관계자들과 영향평가에 함께했던 교수들은 천성산 지역에서 도롱뇽의 서식을 확인하지 못했으며 도롱뇽이 살 가능성은 배제 할 수 없지만 살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실질적으로 도롱뇽의 서식을 부인하는 법적 증언을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수달과 원앙, 삵과 담비, 소쩍새와 황조롱이, 꼬마잠자리 물방개 등 천성산에 살고 있는 30종의 보호 동식물에 대하여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천성산에는 특별히 보호를 요하는 동식물은 없음” 이라는 놀라운 보고서로 환경영향평가의 면죄부를 주게됩니다. 천성의 깊은 숲에서 밤마다 울어 대는 소쩍새와 두견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귀를 막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봄이면 온 산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얼레지며, 은방울꽃, 현호색, 피나물군락, 족두리꽃, 천남성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눈을 가리게 한 것은 무엇일까요. 눈앞의 이익에 가려 그들에게는 그 모든 생명의 빛과 소리가 정녕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들이 들을 수 없었던 것은 비단 소쩍새와 두견의 소리 뿐만이 아니며 ‘그들은 텅 빈 허공에 울려 퍼지는 바람소리, 물소리, 그 가운데 생명이 일어나며서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소리가 진동이라는 것을, 진동은 파장이라는 것을 이해 할 수는 있었지만, 파장이 에너지이며 에너지는 생명이라는 것을, 그들이 걷고 있는 논리의 길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빛이 내리고 바람소리, 물소리가 우리의 생명 현상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그렇게 많은 지식이 필요치 않습니다. 물소리 맑은 내원의 계곡에 들어서서 잠시만 귀 기울이면 조용히 꿈꾸는 도롱뇽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